2009/07/03 00:17

담대한 희망, 버락 오바마, 2007

The Audacity of Hope, Barack Obama, 2006


버락 오바마는 근래 보기 드문 슈퍼스타 정치인으로 전세계적인 환호 속에서 이미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다. 그의 성장배경과 이력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은 자칫 식상할 수 있으며, 이 책은 그의 자서전도 아니다. 그러므로 의례적인 얘기는 과감히 생략하고..

“담대한 희망”은 정치인이 큰 선거를 앞두고 내놓는 그런 책이다. 거물급 정치인에 대한 높은 관심만큼이나 이들의 자전적 이야기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곤 하며, 나도 여러 권 읽었던 기억이 있다. 대개는 어려운 성장기에도 그들은 범상치 않았으며 주경야독으로 노력하고, 또 남다른 능력과 불굴의 의지로 성공궤도에 올랐다는 정도로 모두 요약할 수 있겠다. 하지만 대권 출마 4개월 전에 펴낸 “담대한 희망”에서 버락 오바마는 자신의 성장과정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는다. (물론 이미 이전에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 Dreams from My Father을 출간하기는 했다.) 대신에 오바마는 이 책에서 공화당과 민주당, 가치 체계, 헌법, 정치, 기회, 신앙, 인종, 국경 너머의 세계, 가족이라는 아홉 가지 주제에 대해서 자신의 견해를 자신의 경험과 연결시키며 담담히 서술하고 있다. 이런 ‘따분한’ 책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는 점, 다시 말해 미국의 유권자들이 후보의 성장배경이나 성공스토리 뿐 아니라 그의 이상과 가치에 대해 진지한 관심을 갖는다는 점은 참으로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바마는 실제로 글을 쓸 줄 아는, 그것도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감동과 진실을 담아 쓸 수 있는 희귀한 정치인이다.’ 실제로 그의 문장은 격정적이기보다는 따뜻하고, 거창하기보다는 소박하면서도, 가볍지 않고 격조가 높다. 이러한 그의 필력은 오바마 특유의 감동적인 연설과 더불어 그를 다른 정치인과 다르게 보이도록 도와주는 경쟁력일 것이다.

모든 챕터가 흥미진진했지만 내가 가장 흥분했던 주제는 ‘헌법’이었다. 위정자가 헌법의 정신을 따르고 수호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명제 같지만, 우리 정치 현실을 돌아보면 여야를 막론하고 과연 헌법을 이해하는 정치인이 얼마나 되는지 한숨이 나온다. 심지어 일부는 헌법을 읽어보고 정치판에 뛰어들었는지 의심스럽기 조차하다. 법조계 출신도 매한가지이지만.

p. 140
헌법의 기본 틀이 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장래 문제를 논의하는 방식을 체계적으로 제시하는 일이다. 빈틈없이 짜인 헌법의 여러 장치들, 다시 말해 권력 분립과 견제와 균형, 연방제 원칙, 권리 장전 등은 모두 우리를 대화의 장으로 모이게 하기 위한 것이다. 모든 시민은 자신의 견해를 현실적인 여건에 비춰 시험해 보고, 자신의 관점에 동의하도록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며, 의견이 합치되는 사람들과 새로 제휴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 ‘토론형 민주주의(deliberative democracy)’를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정부의 권한이 광범위하게 분산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입법 과정에서 우리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라는 가능성을 받아들여 때때로 생각을 바꾸지 않을 수 없다. 입법 과정은 우리 자신의 동기와 이해관계를 끊임없이 점검하게 만들면서 우리의 개별적, 집단적 판단이 정당하면서도 동시에 잘못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일깨워 준다.
역사적 기록이 이런 생각을 뒷받침한다. 헌법 제정자들이 똑같이 가졌던 한 가지 열망이 있었다면 그것은 일체의 절대적 권능을 배격하는 것이었다. 군주, 신권 정치가, 장군, 과두 정치 집정자, 독재자나 다수파, 또는 그 밖의 어떤 사람도 절대 권력을 장악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p. 142
민주적 토의를 하려면 이상적인 목표나 공동선의 추구를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다. 결국 헌법이 표현의 자유를 뒷받침하는 것은 사람들이 서로 목청껏 소리치면서 상대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있는 자유만 보장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자유를 통해 진정한 의미의 아이디어 시장이 형성될 가능성도 함께 열어 놓은 것이다. 물론 이런 시장에서는 ‘심사숙고와 신중함’ 대신 ‘당파 간의 알력과 충돌’이 위력을 발휘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토론과 경쟁을 통해 우리의 시각을 넓히고 생각을 바꾸어 결국에 가서는 충실하고 공정한 합의에 도달하게 한다.


얘기를 바꿔서 세금 문제.

p. 270
그러나 부시 행정부가 누적시킨 채무는 대부분 감세 조치 때문에 생긴 것이다. 그동안 쌓인 채무의 47.4퍼센트는 감세 조치를 통해 상위 5퍼센트 소득 계층에게 돌아갔다. 상위 1퍼센트에 돌아간 감세 혜택은 무려 이런 채무액의 36.7퍼센트에 이른다. 연간 160만 달러 이상의 소득으로 최상위 0.1퍼센트에 속하는 부자들에게도 감세 혜택으로 이런 누적 채무액의 15퍼센트가 돌아갔다.

오바마는 진보주의자이다. 공공연히 증세를 주장한 후보가 감세안을 강력히 내건 후보를 누르고 당선된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것은 오랜 공화당 집권 동안 꾸준히 펼쳐진 감세 정책이 지금의 경제위기를 불러일으켰음을 국민들이 깨달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거듭 말하지만, MB 정권과 오바마 정권의 정책이 닮았다는 일부 언론의 주장은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한다. 감세와 증세, 작은 정부와 큰 정부는 모든 면에서 구별된다. 오바마 행정부가 보수세력의 파상공격을 막아내고 기대만큼이나 성공적인 진보정권으로 기억될지 우리는 조용히 지켜볼 지어다.


 

저작자 표시
Trackback 0 Comment 0
2009/07/03 00:10

미래를 말하다, 폴 크루그먼, 2008

The Conscience of a Liberal, Paul Krugman, 2007


"미래를 말하다"라는 번역은 참으로 구차하고 구리다.

지난 겨울 전문의 시험 준비 막바지에 덥석 집어들고 공부시간 아끼려고 하루에 한 챕터씩 읽었던 책. 경제서적이란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쉬운 문체로, 작은 정부 큰 시장이 절대선이라는 기존의 고정관념을 정면으로 반박한 놀라운 책. 앨런 그린스펀으로 무작정 시작된 나의 경제공부는 폴 크루그먼에서 비로소 내 색깔을 찾을 수 있었다.

미국의 중산층은 점진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프랭클린 델러노 루스벨트 행정부 정책의 일환인 전시 임금통제를 통해 몇 년이 채 안 되는 기간 안에 만들어졌다. 길었던 도금시대(1870년~1930년대)가 경제적 평등의 시대로 접어든 것은 자본주의의 자연스런 성숙과정이 아니라 루스벨트 행정부와 뉴딜정책에 의해 강제적이고 급진적으로 변화한 것이다. 경제학자들은 이를 대압축(Great compression)이라 부른다. 그리고 레이건에서 시작되어 부시 부자에 이르는 30년의 보수주의 혁명(conservative movement)을 거치면서 2005년 미국의 소득분배는 1920년대 수준으로 회귀하였다.

1920년대 미국의 소득세 상한선은 24%, 상속세 상한선은 20%였다. 루스벨트 행정부는 뉴딜정책과 전후의 복구비용의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소득세 상한을 91%까지, 상속세 상한을 77%까지 올렸다. 부자들은 뉴딜정책을 통해 실제로 그들의 소득 상당 부분을, 어쩌면 거의 전부를 세금으로 빼앗겼다. 루스벨트 행정부는 처음부터 끝까지 부자들에게 적이었으며, 보수주의자들의 악랄한 공격을 받았다. 루스벨트가 선거를 앞두고 빨갱이니, 우리의 재산을 모두 앗아 간다느니, 가진자들이 투자를 꺼리게 되어 경제의 활력이 떨어진다느니 공격을 받았던 것은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허구헌날 듣는 이야기와 완전히 똑같다. 하지만 과연 루스벨트 행정부의 세금폭탄 정책 뒤에 미국 경제는 몰락하였는지, 또 1920년대 보수 언론과 공화당의 주장처럼 루스벨트가 정말 빨갱이였는지 곰곰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역사는 항상 진실을 말해 준다. 루스벨트 20년의 집권 뒤에 시대를 호령했던 거부들은 몰락하였으며 미국은 중산층 중심의 건강한 국가가 되었다. 그리고 전후 미국은 세계 유일의 초대강대국으로 군림하게 되었다. 이런 것들이 뉴딜정책의 본질이라고 크루그먼은 말한다. 대규모 토목공사를 뉴딜정책이라 지칭하며 전면적인 감세 정책과 양립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 땅의 위정자들을 생각하면 한심하기 그지 없다. 더구나 한국판 뉴딜정책을 홍보하면서 MB정권과 오바마 정부가 닮았다느니 떠들어 대는 보수 언론들을 보면 황당한 지경이다.
 
“현실적으로 극심한 소득 불균형은 극심한 사회 불평등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그리고 사회 불평등은 단순히 부러움과 수치심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국민들의 생활방식에 실제로 부정적인 영향을 가져온다. 수백만의 중산층 가정이 자녀를 좋은 학교에 보내기 위해 실제 형편보다 무리해서 집을 사고, 갚을 수 있는 능력보다 많은 빚을 진다. 이들 중산층은 욕심이 많거나 멍청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자녀에게 점점 더 불평등해지는 사회에서 기회를 마련해 주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가운데 어쩔 수 없이 빚을 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걱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좋은 곳에서 시작하지 못하면 자녀의 미래는 완전히 망가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폴 크루그먼의 말은 마치 2009년 대한민국의 모습을 이야기하는 것 같아 섬뜩하다.

노벨상 수상 이후 폴 크루그먼의 영향력은 크게 신장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2009년 미국은 오바마 행정부를 선택했다. 공화당 후보 진영에서 오바마를 가르켜 빨갱이니 테러리스트니 했던 것 역시 대한민국의 선거전과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인다. 하지만, 미국인들은 놀랍게도 감세를 주장하는 공화당을 버리고 증세를 주창하는 민주당을 선택했다. 멀리 떨어진 저 대륙에서 진보주의의 실험이 성공할 수 있는지 지켜볼 때이다.

저작자 표시
Trackback 0 Comment 0
2009/07/02 12:48

내 인생의 첫책쓰기, 오병곤, 홍승완 지음, 2008

“최고의 자기계발은 책쓰기다.” 이 책은 이 명제에 충실한 책이다. 언제부턴가 일본에서 건너온 자기계발 서적이 유행을 한 적이 있다. 대학교수나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라 평범한 샐러리맨이 자기 생각과 경험을 저술한 책들. 나는 전문성이 부족해 보여 별로 곱잖게 생각했는데 이젠 국산 자기계발 서적들이 그 물줄기를 탄 것 같다. 이 책은 그런 책을 수월하게 쓰기 위한 지침서이자 그 스스로가 그런 책이다.

저자들은 말한다. 자기 분야에 정통한 평범한 샐러리맨도 훌륭한 저자가 될 수 있다고. 부족한 권위는 수많은 책들을 인용함으로써 보충하였고, 저자들의 생각과 경험을 체계적으로 종합하여 한 권으로 책으로 묶었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이 있는 한가지 주제에 대해 다수의 문헌에서 여러 자료를 잘 수집한 책. 이런 수집 자체도 창조적인 과정이므로 얼마나 수명이 길지는 모르겠지만, 존재의의는 있다.



밑줄 그으며 책읽기

p. 64
독서노트 쓰기는 책 읽기 전부터 시작해야 한다. 책을 읽기 전에 미리 저자에 대해 샅샅이 조사하여 기록해둔다. 저자의 이력과 이제까지 쓴 책, 그리고 이 책을 썼을 당시의 상황을 파악해두면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중략) 그런 다음 본격적으로 책을 읽으며 내용을 정리한다. (중략) 먼저 가슴을 후비는 문장이나 객관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내용은 검정색으로 밑줄을 친다. 그중에서 특별히 인용하고 싶은 구절에는 빨간색으로 표시한다. 나만의 단어목록에 추가하고 싶은 매력적인 단어는 초록색이다. 마지막으로,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과 저자 입장에서 생각한 점들을 파란색으로 빈 공간에 적어둔다. (중략) 대개 이틀 동안 책을 읽고 점심시간 등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밑줄 친 내용과 메모를 독서노트에 기록한다.

p. 154
만일 당신이 논쟁거리를 던진다면 독자는 판단하고 평가하고 비판하려고 할 것이다. 당신이 정면으로 부딪히면 독자는 싸우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던진다면 독자는 당신의 덫에 걸려들 것이다. 독자는 공감하면서 ‘나도 한 번 이렇게 하고 싶다.’고 다짐한다. 그러니 설명하지 말고 이야기하라.

p. 176
책을 쓰는 것은 가장 돈을 적데 들이면서 객관적인 전문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좋은 방법 중 하나다.

p. 211
주어와 서술어를 일치시킨다. 조사를 정확하게 사용한다. 부사를 남발하지 않는다. 접속어는 필요할 때만 사용한다. 긴 문장은 단문으로 나눠 쓴다. 같은 단어나 표현은 반복하지 않는다. 수동태는 피한다. 호흡이 가빠지거나 소재가 바뀌면 문단을 나눈다.

p. 291
“많은 자료를 모으면 자신감이 생깁니다. 유명한 대학 교수들이 책 낸 거 보면 심하게 말해서 짜깁기가 적지 않습니다. 이게 나쁘다는 뜻이 아닙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좋은 자료를 제대로 정리해도 괜찮은 책이 나올 수 있다는 겁니다. 루트번스타인의 <생각의 탄생>도 사실은 자료 수집 책입니다. 그 책에서 유명인과 전문가들의 말과 일화, 그리고 연구결과를 뺀다고 생각해보세요. 아마 그 두꺼운 책이 5분의 1 정도로 줄어들 겁니다. 아이디어와 자료 수집이 자기 얘기를 쓰는 것보다 더 중요한 시절이 됐는지도 모릅니다.”

 


 

저작자 표시
Trackback 0 Comment 0